펄 S. 벅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펄 S. 벅은 미국 장로교 선교사의 딸로 중국에서 성장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펼친 작가이다. 1931년 소설 《대지》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1938년에는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벅은 여성의 권리, 아시아 문화, 입양, 전쟁 고아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적인 인종 간 입양 기관인 웰컴 하우스를 설립하는 등 사회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전쟁 고아와 혼혈아동을 위한 소사희망원을 설립하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발표하는 등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으며, 부천에는 그녀의 박애 정신을 기리는 부천펄벅기념관이 건립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중국학자 - 신숙주
신숙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언어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세조 즉위 후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외교와 국방에 기여했으며, 《해동제국기》, 《동국정운》 등의 저술을 남기고 영의정을 지냈다. - 중국학자 - 오타니 고즈이
오타니 고즈이는 니시 혼간지의 주지로 종파 근대화를 추진하고 중앙아시아 탐험을 통해 '오타니 컬렉션'을 수집했으나, 재정 스캔들과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일본의 승려이자 탐험가, 학자이다. - 중국에서 활동한 기독교 선교사 - 넬슨 벨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이자 언론인인 넬슨 벨은 중국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 후 《더 서던 프레즈비테리언 저널》을 창간하여 보수적인 장로교 세력을 옹호했으며, 사위 빌리 그레이엄에게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창간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치적으로도 활동했다. - 중국에서 활동한 기독교 선교사 -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
프랑스 선교사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는 제4대 조선 교구장으로서 1856년 조선에 입국하여 천주교 교세 확장에 기여했으나,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하여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그의 순교는 병인양요의 원인이 되었다. - 장로교 선교사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는 연세대학교 설립자이자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로, 1885년 한국에 입국하여 새문안교회와 경신학교를 설립하고 YMCA 창설, 성서 번역, 한국어 연구, 독립운동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가족 또한 한국에서 교육 및 의료 사업에 헌신하였다. - 장로교 선교사 - 넬슨 벨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이자 언론인인 넬슨 벨은 중국에서 의료 선교사로 활동 후 《더 서던 프레즈비테리언 저널》을 창간하여 보수적인 장로교 세력을 옹호했으며, 사위 빌리 그레이엄에게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창간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치적으로도 활동했다.
펄 S. 벅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펄 시든스트리커 |
중국어 이름 | 賽珍珠 (Sài Zhēnzhū, 싸이전주) |
중국어 이름 (웨이드-자일스) | Sai Chen-chu |
중국어 이름 (한어 병음) | Sài Zhēnzhū |
중국어 이름 (광동어) | Precious Pearl Sy' |
출생일 | 1892년 6월 26일 |
출생지 | 웨스트버지니아주 힐스버러, 미국 |
사망일 | 1973년 3월 6일 |
사망지 | 버몬트주 댄비, 미국 |
학력 | |
대학 | 랜돌프 칼리지 (BA) |
대학원 | 코넬 대학교 (MA) |
직업 | |
직업 | 작가, 교사 |
결혼 | |
배우자 | 존 로싱 벅 (1917년 결혼, 1935년 이혼) 리처드 존 월시 (1935년 결혼, 1960년 사별) |
자녀 | 8명 |
수상 | |
주요 수상 | 퓰리처상 (1932년) 노벨 문학상 (1938년) |
서명 | |
![]() | |
일본어 정보 | |
이름 (일본어) | パール・バック |
출생지 (일본어) | 웨스트버지니아주 |
사망지 (일본어) | 버몬트주 |
수상 (일본어) | 퓰리처상(1932년) 노벨 문학상(1938년) |
업적 | |
노벨 문학상 수상 이유 | 중국 농민의 삶을 풍부하고 진정으로 서사적으로 묘사한 공로 |
2. 생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으나,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로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이러한 성장 배경은 그녀가 자신을 "출생과 혈통으로는 미국인이지만, 공감과 감각으로는 중국인"으로 여기게 만들었으며, 그녀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이중 언어 사용자였으며, 중국 이름은 '''賽珍珠'''(사이진주)였다.
1910년대 초 미국으로 돌아와 랜돌프-매콘 여자대학교를 졸업했으나, 어머니의 병환으로 다시 중국으로 가 선교 활동과 교육에 종사했다. 1917년 농업경제학자 존 로싱 벅과 결혼하였고, 이후 난징의 대학들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난징 사건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으며 중국 사회의 현실을 깊이 체험했고, 이는 그녀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31년 발표한 소설 《대지》(The Good Eartheng)는 중국 농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아들들》(Sonseng, 1933), 《분열된 집》(A House Dividedeng, 1935)을 연이어 발표하며 3부작 《대지의 집》(The House of Eartheng)을 완성했다. 1938년, "중국 농민의 삶에 대한 풍부하고 진정한 서사적 묘사"와 전기 작품들을 통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24]
작품 활동 외에도 인권 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인종 차별 문제와 아동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첫 딸 캐롤이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경험은 그녀가 장애 아동과 입양 문제에 헌신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49년, 혼혈 아동 입양을 돕기 위해 미국 최초의 국제적, 인종 간 입양 기관인 '웰컴 하우스(Welcome House)'를 설립했으며, 1964년에는 아시아계 혼혈 아동의 교육과 복지를 위한 펄 S. 벅 재단(Pearl S. Buck Foundation, 현 펄 S. 벅 인터내셔널)을 창설했다. 이 재단을 통해 한국 전쟁 이후 어려움을 겪던 한국의 전쟁고아와 혼혈 아동을 위한 지원 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1934년 중국을 떠난 후 미국에 정착했으며, 1935년 첫 남편과 이혼하고 출판사 사장 리처드 월시와 재혼했다. 1949년 중국 공산혁명 이후에는 중국 방문이 거부되었고,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 동행도 무산되었다. 말년에는 여러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1973년 펜실베이니아주 댄비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작가이자 인도주의자로서 동서양 문화 교류와 인권 증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본명은 펄 컴포트 시든스트리커(Pearl Comfort Sydenstricker)로,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힐스보로에서 태어났다.[5] 부모는 남장로교 선교사인 압살롬 시든스트리커와 캐롤라인 모드(스털팅)였으며, 네덜란드계와 독일계 혈통이었다.[5] 부모는 1880년 결혼 후 중국으로 이주했으나, 펄의 출산을 위해 잠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펄이 태어난 지 3개월[4](또는 5개월[6]) 만에 가족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장쑤성 전장(당시 칭장)에 정착했다.[6] 여름에는 구릉(九江)에서 시간을 보냈고,[7][8] 이곳에서 어린 시절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2]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낸 펄 벅은 자신을 "출생과 조상으로는 미국인이지만, 공감과 감각으로는 중국인"이라고 여길 만큼 중국 문화에 깊이 동화되었다. 회고록에서는 "부모님의 작고, 희고, 깨끗한 장로교 세계"와 "크고, 사랑스럽고, 즐겁고,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중국 세계"라는 두 개의 분리된 세계에서 살았다고 언급했다.[11] 중국 이름은 '''賽珍珠'''(사이진주)였다. 7명의 형제자매 중 4명은 유년기에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의화단 운동(1899~1901) 시기에는 서양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족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상하이의 미스 주얼 스쿨(Miss Jewell's School)에 잠시 다녔으나, 중국어를 모르는 다른 학생들의 인종차별적인 태도에 실망하기도 했다.[11] 어머니에게는 영어를, 중국인 친구들에게는 현지 방언을, '공 선생(Mr. Kung)'이라는 이름의 학자에게는 한문을 배우며 이중 언어 구사자로 성장했다.[12]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탐독했으며, 나중에는 평생 동안 매년 그의 작품을 읽었다고 술회했다.[12]
1911년[12](또는 1910년[4]) 대학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랜돌프-메이컨 여자대학교에 입학했다. 1914년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회원으로 졸업했으며, 카파 델타(Kappa Delta) 여자 사교 클럽 회원이었다.[12] 대학 졸업 후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장로교 선교부에 지원하여 1914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13]
2. 2. 중국에서의 삶과 작품 활동
1910년 미국으로 가 1914년 랜돌프-매콘 여자대학교를 졸업한 펄 벅은 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1917년, 농업경제학자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eng)과 결혼하며 성을 '벅'으로 쓰기 시작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안후이성 쑤저우에서 생활했는데, 이곳에서의 경험은 훗날 대표작 《대지》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난징의 금릉대학과 동남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으며, 1926년에는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 코넬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927년, 국민당의 북벌 과정에서 발생한 난징 사건은 펄 벅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국민혁명군의 난징 공격으로 온 가족이 위험에 처했던 경험은 그녀에게 중국 사회의 깊은 균열을 깨닫게 했고, 이는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그녀는 이 균열을 미국인으로서 제2의 조국인 중국에 대한 애정을 통해 메우고자 평생 노력했다. 난징 사건 이후 잠시 일본 운젠으로 피신했다가 중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 동양과 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첫 장편 소설 《동풍 서풍》(East Wind: West Windeng)을 출판했다. 이 작품은 출판사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며 1년 만에 세 차례나 재인쇄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31년에는 대표작 《대지》(The Good Eartheng)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이 소설은 가난한 농부에서 대지주로 성장하는 왕룽 일가의 이야기를 통해 격동기 중국 농촌 사회와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그려내어 193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같은 해 뉴욕에서의 강연 내용이 문제가 되어 장로교로부터 비판을 받고 선교사직을 사퇴했다.
《대지》 이후, 왕룽의 세 아들이 각각 지주, 상인, 군벌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아들들》(Sonseng, 1933년)과 《분열된 집》(A House Dividedeng, 1935년)을 연이어 발표하며 3부작 《대지의 집》(The House of Eartheng)을 완성했다.
1934년 중국을 떠난 펄 벅은 1935년 6월 11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첫 남편 존 로싱 벅과 이혼했고[21], 같은 날 자신의 저서를 출판해 온 J. 데이 출판사 사장 리처드 월시(Richard J. Walsheng)와 재혼했다.[22] 이후 미국에 정착하여 활동을 이어갔다. 리처드 월시는 펄 벅에게 조언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고, 이는 그녀의 왕성한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고 전해진다.[15]
1949년 중국 공산혁명 이후, 펄 벅은 중국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1962년 발표한 소설 《사탄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Satan Never Sleepseng)에서는 중국 공산당 통치 현실을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문화 대혁명 시기에는 중국 농촌을 묘사한 미국 작가라는 이유로 "미국 문화 제국주의자"로 비난받기도 했다.[23]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에 동행하려 했으나 중국 정부로부터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고, 이는 그녀에게 큰 상심을 안겼다.[22]
2. 3. 미국에서의 활동과 사회 참여
1934년,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온 펄 벅은 다시는 중국 땅을 밟지 않았다. 1935년, 첫 남편 존 로싱 백과 이혼하고 출판 에이전트였던 리처드 월시와 재혼했다.미국에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벅은 1938년, 스웨덴의 탐험가이자 학자인 스벤 헤딘의 추천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수상 이유에 대해 "광범위하게 분리된 인종적 경계를 넘어 인간적 공감으로 이어지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과 위대한 살아있는 초상화 예술인 인간적 이상에 대한 연구를 인정하고자" 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24] 벅은 수상 연설에서 "중국 소설"을 주제로 삼아, 자신은 미국인이지만 이야기와 글쓰기에 대한 지식은 중국에서 얻었으며, 삼국지연의, 수호전, 홍루몽과 같은 중국 고전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 소설가의 임무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며, 자신 또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고 강조했다.[25]
펄 벅은 작품 활동 외에도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딸 캐롤을 낳은 후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자, 6명의 고아를 입양하여 길렀다. 이를 계기로 1949년, 남편 리처드 월시와 함께 인종을 불문하고 입양을 중개하는 기관인 '웰컴 하우스(Welcome House)'를 설립했다. 남편 리처드 월시 사후에는 댄스 교사였던 시어도어 해리스와 재혼했고, 1964년 그와 함께 미국인과 아시아인 혼혈 아동들의 교육과 복지를 위한 펄벅 재단(Pearl S. Buck Foundation, 현 Pearl S. Buck International)을 설립했다. 또한, 히로시마에서의 평화 활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 시어도어 해리스와 이혼한 후, 말년에는 버몬트주에서 은둔 생활을 보냈다.
2. 4. 한국과의 인연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의 OSS에서 중국 담당으로 활동하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OSS의 한국 전문가였던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과 중국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의 아내가 중국계 미국인인 호미리였고, 유일한 역시 숙주나물 통조림 제조사인 라초이 식품회사를 운영하며 중국의 녹두 상인들과 거래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펄 벅은 훗날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을 '김일한'으로 짓기도 했는데, 이는 유일한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했음을 보여준다.다만, 1910년대 중국 난징의 금릉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칠 당시 여운형, 엄항섭 등이 제자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 이전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인연을 바탕으로 펄 벅은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과의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케네디 대통령이 백악관 만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펄 벅에게 주한미군 주둔 비용 문제를 언급하며 "차라리 과거처럼 일본이 한국을 다시 통치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펄 벅은 "그것은 마치 미국이 옛날 영국의 식민지로 돌아가자는 말과 같다"고 응수하며 한국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63]
펄 벅은 한국 전쟁 이후 혼혈 아동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돕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49년, 기존 입양 기관들이 아시아계 및 혼혈 아동 입양을 꺼리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껴, 미국 내 아시아계 혼혈 아동을 위한 최초의 국제적, 인종 간 입양 기관인 '웰컴 홈(Welcome Home)'을 설립했다. 이후 1964년에는 "아시아 국가의 어린이들이 직면한 빈곤과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펄 S. 벅 재단(1999년 펄 S. 벅 인터내셔널로 개칭)[29]을 설립했다. 이 재단을 통해 한국에 고아들을 위한 '기회 센터(Opportunity Center)'와 고아원을 설립하여[30] 교육적,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을 지원했는데, 이는 요약에서 언급된 '소사희망원' 설립 활동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을 집필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대표적인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작품명 | 원제 | 발표 연도 | 비고 |
---|---|---|---|
한국에서 온 두 처녀 | Two Kinsmen | 1951년[63] | 원문에는 한국에서 온 두 처녀로 표기되어 있으나, 해당 제목의 펄 벅 작품은 확인되지 않음. 1951년 발표된 작품 목록에도 없음. 원문[63]의 연도 표기를 따름. |
살아있는 갈대 | The Living Reed | 1963년 | 1900년대 한국 배경 장편소설. 경향신문 1963년 9월 10일부터 연재. |
새해 | The New Year | 1968년 |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8년 3월에는 서울특별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2. 5. 말년과 죽음
1960년대 중반부터 펄 벅은 전직 무용 강사였던 시어도어 해리스(Theodore Harris)의 영향을 크게 받기 시작했다. 해리스는 벅의 절친한 친구이자 공동 저술가, 재정 고문이 되었고, 벅은 점차 일상적인 모든 일을 그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리처드 월시 사후 해리스와 재혼한 벅은 그에게 웰컴 하우스(Welcome House)와 펄 S. 벅 재단(Pearl S. Buck Foundation)의 관리권을 맡겼다. 그러나 해리스는 재단의 수장으로서 재단 자금을 자신의 친구들이나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하고 직원들을 부당하게 대우하여 큰 스캔들을 일으켰다.[39] 그럼에도 벅은 해리스를 "매우 똑똑하고, 매우 예민하며 예술적인 사람"이라며 변호했다.[1] 또한 사망하기 전, 해리스가 관리하는 재단인 크리에이티비티 주식회사(Creativity Inc.)에 자신의 해외 저작권료와 개인 소유물을 양도하기도 했다.[40] 1970년, 벅은 해리스와 이혼하였고, 말년에는 버몬트주에서 은둔 생활을 보냈다.3. 작품 세계
펄 벅의 작품 세계는 주로 중국을 배경으로 하며, 동양과 서양 문명의 충돌과 조화, 격동기 중국 민중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룬다. 그녀는 중국 농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했다.
1930년 발표한 첫 장편 소설 《동풍 서풍》은 동서 문명의 갈등을 주제로 하여 출판사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1931년 발표한 《대지》는 빈농 출신 왕룽 일가의 연대기를 통해 중국 농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1932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대지》는 이후 왕룽 사후 세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아들들》(1933년)과 《분열된 집》(1933년)과 함께 3부작 《대지의 집》을 이룬다.
이러한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1938년 미국 여성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평화와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작품에 반영했으며,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혼혈 아동 문제 해결을 위해 펄 벅 재단을 설립하는 등 사회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남겼다.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는 1881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말까지 한국 상류층 가정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으며, 《새해》(1968년)는 한국의 혼혈아 문제를 조명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전기 《싸우는 천사들》과 어머니를 모델로 한 《어머니의 초상》 등을 집필했다.
펄 벅의 작품은 중국 민중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존엄성을 탐구하며, 동서양 문화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서사를 넘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3. 1. 주요 작품 목록
- 1930년 《동풍 서풍》 East Wind: West Windeng: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첫 장편 소설.
- 1931년 《대지》 The Good Eartheng: 빈농에서 대지주가 된 왕룽과 그의 가족사를 그린 대표작. 《대지의 집》(The House of Earth)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 1933년 《아들들》 Sonseng: 《대지의 집》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 왕룽 사후 세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 1933년 《분열된 집》 A House Dividedeng: 《대지의 집》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 1934년 《어머니》 The Mothereng: 이름 없는 중국 여성을 통해 영원한 모성애를 그린 작품.
- 1936년 《싸우는 천사들》 Fighting Angeleng: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전기.
- 1936년 《어머니의 초상》 The Exile: Portrait of an American Mothereng: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전기.
- 1939년 《애국자》 The Patrioteng
- 1951년 <한국에서 온 두 처녀>
- 1954년 《나의 가지가지 세계》 My Several Worldseng: 자서전.
- 1956년 《서태후》 Imperial Womaneng
- 1963년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The Living Reedeng: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1881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말까지 한국 상류층 가정의 변천사를 묘사했다. 1963년 경향신문에 <살아있는 갈대>라는 제목으로 연재되기도 했다.
- 1968년 《새해》 The New Yeareng: 한국의 혼혈아 문제를 소재로 다룬 소설.


4. 사회적 영향
1938년 노벨 문학상 위원회는 펄 벅에게 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작품이 "광범위하게 분리된 인종적 경계를 넘어 인간적 공감으로 이어지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며 "위대한 살아있는 초상화 예술인 인간적 이상에 대한 연구"라고 평가했다.[24] 이는 그녀의 작품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높이 인정한 것이다.
펄 벅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중국 소설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며, 소설가의 임무는 단순한 예술 창조가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가 특정 소수보다는 평범한 대중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그녀의 작품이 폭넓은 독자층에게 다가가고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되었다.[25] 그녀의 대표작 『대지』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서구 사회에 중국의 문화와 삶을 생생하게 소개하며 동서양 간의 이해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작품 활동 외에도 펄 벅은 사회 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인종 차별 문제와 전쟁 등으로 소외된 아동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두 번째 남편 리처드 월시와 함께 인종을 불문하고 아이들을 입양하고 지원하는 기관인 Welcome Houseeng를 설립하여 국제 입양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또한,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진 혼혈 아동들의 교육과 복지를 위해 Pearl S. Buck Foundationeng(현 Pearl S. Buck Internationaleng)을 설립했다. 이러한 활동은 당시 사회적으로 팽배했던 인종적 편견에 맞서 싸우고, 혼혈 아동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 되었다. 펄 벅은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히로시마의 평화 운동을 지원하는 등[25]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노력에도 힘을 보탰다. 그녀의 삶과 활동은 문학 작품을 넘어 사회 곳곳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여성, 아동, 혼혈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 향상에 기여한 인도주의자로서 평가받는다.
4. 1.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
펄 벅이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OSS에서 중국 담당으로 활동하면서부터로 알려져 있다. 당시 OSS의 한국 전문가였던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과 중국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에 대한 호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유일한의 아내가 중국계 미국인이었고, 유일한 역시 중국과 사업적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펄 벅은 훗날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을 '김일한'으로 짓기도 했는데, 이는 유일한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겼음을 보여준다.그러나 1910년대 난징 금릉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칠 당시 제자 중에 여운형, 엄항섭 등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그 이전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인연을 바탕으로 펄 벅은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과의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케네디 대통령이 백악관 만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펄 벅에게 주한미군 주둔 비용 문제를 언급하며 "옛날처럼 일본이 한국을 다시 지배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펄 벅은 "그것은 마치 미국이 옛날 영국의 식민지로 돌아가자는 말과 같다"고 응수하며 한국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전해진다.[63]

펄 벅은 한국전쟁 이후 어려움을 겪던 한국 사회, 특히 전쟁 고아와 혼혈 아동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1964년, "출생 때문에 교육적, 사회적, 경제적, 시민적 특권을 누릴 수 없는 어린이들이 겪는 불의와 편견을 알리고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펄 S. 벅 재단을 설립하고, 한국에 기회 센터와 고아원을 세웠다.[30]
1967년에는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에 '소사희망원(Sosa Opportunity Center)'을 건립했다. 1973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며 한국전쟁 고아와 혼혈 아동들을 직접 돌보고, 그들에게 미용, 양장 등 자립을 위한 기술 교육을 제공했다. 소사희망원은 1975년에 문을 닫았다.
펄 벅의 이러한 헌신과 박애정신을 기리기 위해 부천시는 2006년 9월 30일, 옛 소사희망원 자리에 부천펄벅기념관을 개관했다. 기념관은 펄 벅의 생애와 업적을 알리고 그녀의 정신을 계승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2019년부터 부천문화원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5. 비판과 논란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비판과 논란' 섹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해당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6. 펄벅 기념 사업
(작성할 내용 없음)
6. 1. 부천펄벅기념관
펄벅 여사는 1967년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에 '소사희망원'(Sosa Opportunity Center영어)을 건립했다. 그녀는 197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한국 전쟁 고아와 혼혈 아동을 직접 돌보며 미용, 양장 기술 등을 가르쳤다. 소사희망원은 1975년에 문을 닫았다.부천시는 펄벅의 박애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6년 9월 30일, 옛 소사희망원이 있던 자리에 부천펄벅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은 2019년부터 부천문화원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6. 2. 한국펄벅재단
1964년에 사회복지법인 한국펄벅재단이 설립되었다. 이 재단은 펄벅 여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복지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참조
[1]
웹사이트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1938
https://www.nobelpri[...]
2013-03-09
[2]
웹사이트
Kuling American School Association – Americans Who Still Call Lushan Home
http://www.kulingame[...]
2021-07-23
[3]
서적
Pearl S. Buck
[4]
서적
The Conversion of Missionaries
Penn State University Press
1996
[5]
논문
Pearl Buck's "Several Worlds" and the "Inasmuch" of Christ
https://journals.sag[...]
2024-01-22
[6]
서적
The United States in Asia: a historical dictionary
https://books.google[...]
Greenwood Publishing Group
1990
[7]
웹사이트
赛兆祥墓碑
http://www.mylushan.[...]
2021-07-22
[8]
웹사이트
Pearl S. Buck house in Zhenjiang
http://www.sexualfab[...]
2021-07-22
[9]
뉴스
Grace Sydenstricker Yaukey papers, 1934–1968
http://archiveswest.[...]
Orbis Cascade Alliance
2019-01-17
[10]
뉴스
Grace S. Yaukey Dies
https://www.washingt[...]
2019-01-18
[11]
서적
My Several Worlds: A Personal Record
John Day
1954
[12]
서적
Pearl S. Buck: A Cultural Biography
Cambridge UP
1996
[13]
서적
American Women Speak
ABC-Clio
2016
[14]
서적
An American in China, 1936–1939: A Memoir
https://books.google[...]
Greatrix Press
2004
[15]
논문
Amerasian Children, Hybrid Superiority and Pearl S. Buck's Transracial and Transnational Adoption Activism
https://gwern.net/do[...]
2019
[16]
웹사이트
Reader thanks Pearl Buck for 'beautiful stories' by tending her daughter's unmarked grave
https://www.thedaily[...]
2023-07-24
[17]
서적
Pearl S. Buck
[18]
서적
The Nature of Disaster in China: The 1931 Central China Flood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8
[19]
간행물
Is There a Case for Foreign Missions?
1933-01
[20]
서적
The Good Earth
Washington Square Press
1994
[21]
웹사이트
Pearl Buck's divorce
http://renodivorcehi[...]
2015-10-15
[22]
웹사이트
The Resurrection of Pearl Buck
http://archive.wilso[...]
2016-10-24
[23]
뉴스
A Chinese Fan Of Pearl S. Buck Returns The Favor
https://www.npr.org/[...]
2010-04-07
[24]
웹사이트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1938
https://www.nobelpri[...]
[25]
웹사이트
The Chinese Novel
https://www.nobelpri[...]
[26]
서적
Pearl S. Buck
[27]
웹사이트
Pearl S. Buck
2023-01-04
[28]
웹사이트
Pearl S. Buck
https://www.britanni[...]
2023-03-02
[29]
웹사이트
Home
https://pearlsbuck.o[...]
2019-02-25
[30]
웹사이트
Our History
http://www.psbi.org/[...]
2009
[31]
뉴스
Pearl Buck's son speaks of her love: In Bucks Library, he recalls happy childhood at Green Hills Farm
https://www.mcall.co[...]
2023-07-23
[32]
서적
Eichmann: his life and crimes
Vintage
2005
[33]
웹사이트
The trial of Adolf Eichmann - Verdict - Exhibition Eichmann on Trial, Jerusalem 1961 – Shoah Memorial
https://juger-eichma[...]
2022-07-07
[34]
서적
The Fear of Chinese Power: an International History
Bloomsbury Academic
2024
[35]
웹사이트
Pearl S. Buck
2023-01-04
[36]
웹사이트
The Pearl S. Buck Birthplace Foundation
http://www.pearlsbuc[...]
2008-09-27
[37]
서적
My Mother's House
Appalachian Press
[38]
웹사이트
DDMap.com: 赛珍珠故居
http://nj.ddmap.com/[...]
2010-02-21
[39]
서적
Regional Interest Magazines of the United States
Greenwood Publishing Group
[40]
잡지
Crumbling Foundation
1969-07-25
[41]
웹사이트
Dragon and the Pearl
http://www.orlok.com[...]
[42]
웹사이트
https://www.readex.c[...]
[43]
뉴스
Pearl Buck's 7 Adopted Children Win Six-Year Battle Over Estate
https://www.nytimes.[...]
2023-07-24
[44]
학술지
Rev. of ''Sons''
[45]
서적
Pearl S. Buck
[46]
서적
Pearl S. Buck: a cultural bridge across the Pacific
Greenwood
[47]
학술지
The Art of Pearl S. Buck
[48]
웹사이트
A Chinese Fan Of Pearl S. Buck Returns The Favor
https://www.npr.org/[...]
NPR
2010-04-07
[49]
웹사이트
Buck, Pearl S.
https://www.womenoft[...]
[50]
웹사이트
Great Americans Issue: 5-cent Buck
http://arago.si.edu/[...]
2013-08-14
[51]
웹사이트
Honorees: 2010 National Women's History Month
http://nwhp.org/whm/[...]
National Women's History Project
2011-11-14
[52]
웹사이트
Pearl S. Buck International: House Archives
http://www.pearlsbuc[...]
2016-10-24
[53]
웹사이트
Pearl S. Buck Collection: About the Collection
https://pearlsbuck.l[...]
2016-10-24
[54]
웹사이트
East Wind: West Wind by Pearl S. Buck
http://www.fantastic[...]
2015-04-06
[55]
뉴스
A Pearl Buck Novel, New After 4 Decades
https://www.nytimes.[...]
2013-05-21
[56]
웹사이트
Pearl S. Buck's Nobel Lecture
https://www.nobelpri[...]
[57]
웹사이트
9780381982638: Words of Love – AbeBooks – Pearl S Buck: 0381982637
https://www.abebooks[...]
[58]
웹사이트
Play review {{!}} ''The Enemy'': Say no to war
https://www.thestate[...]
The Statesman
2019-03-15
[59]
웹사이트
Pearl S. Buck International: Other Pearl S. Buck Historic Places
http://www.psbi.org/[...]
Psbi.org
2006-09-30
[60]
웹사이트
The Big Wave (1961)
https://www.imdb.com[...]
2024-07-29
[61]
서적
パール・バック伝
舞字社
[62]
뉴스
펄벅 여사 44주기 "차별 없는 참사랑 기리자"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7-03-04
[63]
웹사이트
https://www.mk.co.kr[...]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